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부터 일년 반이 넘도록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어느순간부터 사람을 만나는 것 조차 조심스럽게 되어버린 일상. 이러한 상황에서는 “여행”이라는 단어도 어느순간부터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렇다면 해외의 사정은 어떨까. 재미있게도 해외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그중에서도 특히 크루즈가 그렇다. 21년 여름을 시작으로 알래스카, 에게해, 카리브해, 영국, 싱가포르, 홍콩, 그리고 대만 등에서 장기간 운행하지 않았던 크루즈가 호평속에 재개된다.
이렇게 크루즈의 크루즈 부활의 신호탄을 연이어 터뜨리는 가운데 또 다른 빅 뉴스가 들려왔다. 미국 선사가 내년 1월부터 세계일주 크루즈 예정을 발표한 것이다. 세계일주는 규모도 일정도 '크루즈 여행 최고봉'의 존재감을 자랑한다. 세계일주 크루즈를 경험한 필자로서는 이러한 뉴스에 아시아에서 시작하는 세계일주 재개는 대체 언제가 될까, 기대감을 멈출 수 없다.
크루즈 여객선은 흔히‘움직이는 호텔’이라고도 불린다. 선내에서 시간을 보내고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 일어나면 항구에 도착해 있다. 특히 대형 여객선은 선내에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마치 일반 거리나 리조트와 같은 느낌을 준다. 움직이는 호텔이라는 표현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크루즈가 인기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편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객실에서 짐을 풀고 나면 최종하선을 할때까지는 짐을 다시 꾸릴 필요가 없다. 배 안에서 현금을 갖고 다닐 필요도 없다. 일상의 번거로움에서 해방된 공간이다. 크루즈는 특히 시니어 세대에 인기가 많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간편함에 있다. (비행기처럼 장시간 비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인기의 한 요인이다.) 알래스카와 카리브해, 지중해. 최근 다시 크루즈 여행이 재개되는 이 지역들은 세계적인 인기 크루즈 지역이다. 그리고 그런 지역을 한꺼번에 둘러볼 수 있는 크루즈가 있다. 바로 세계일주 크루즈이다.
필자의 경험을 소개하자면, 도쿄에서 출발하는 세계일주 크루즈를 타본 적이 있다. 바로 피스보트 크루즈였다.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시아에서 출발하는 세계일주 크루즈는 매우 흥미진진한 여행이었다. 피스보트 크루즈는 연간 3회의 세계일주를 운영하고 있다. 1983년 아시아 일주 크루즈를 시작으로 출발한 피스보트 크루즈는 100회 이상의 크루즈를 개최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경험은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많은 여행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도 세계일주 크루즈는 여전히 동경의 대상이다. 최근에는 비행기로도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상품이 있지만, 크루즈 여행은 그것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크루즈 여행은 매일이 설레는 나날이다. 출발하는 계절에 따라서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를 거쳐 북유럽과 알래스카를 방문할 수도 있고, 혹은 아프리카, 남미대륙을 거쳐 남미의 파타고니아 피오르드 유람을 볼 수도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멋진 경관을 객실 발코니에 앉아서 만끽할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하고 다양한 기항지에서 견문을 넓힐 수 있는 것도 세계일주 크루즈의 매력이다. 비행기와 달리 크루즈 여행에서는 시차 적응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식사가 입맛에 맞지 않는 괴로움도 없다. 한국 문화의 인기에 힘입어 피스보트 크루즈에서는 김치 등 한식 제공 기회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캐주얼 한 이자카야 같은 주점도 갖추고 있다.
크루즈는 일상에서 벗어난 세계라고도 한다. 하지만 피스보트 크루즈에서는 일상과 비일상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각 기항지를 잘 아는 「선내 게스트」이라 불리는 강사들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고, 영어 회화 같은 유료 문화 스쿨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그 외에도 매일매일 선내에서는 수십가지에 달하는 프로그램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개최되어 본인의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즐길 수 있다. 이 외에도 선내에서 만난 승객과 친해져 크루즈를 내린 이후에도 자주 만나고, 피스보트 세계일주를 몇 번이나 참가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등은 피스보트 크루즈에서 드문 에피소드가 아니다. 시니어 세대이면서 피스보트 세계일주 경험자인 분들은 ‘세계 일주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고 자주 말씀하신다.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피스보트 크루즈의 세계 일주 크루즈. 그 다양성은 비단 기항지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에서 출발하여 일본으로 도착하는 여정이라, 승객의 대부분은 일본국적이다. 그러나 일본 이외의 승선자(한국,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유럽, 미국 등)도 전체 승객의 30%를 차지해 선내에서는 쉽게 일본어, 중국어, 영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를 들을 수 있다. 국적뿐만이 아니다. 연령에 있어서도 60%는 시니어층 이지만 40%는 청장년층이 차지하고 있어 다른 크루즈선과는 달리 선내 곳곳에서 활기 넘치는 크루즈를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환경 속에서 진행되는 100일의 여행동안 배의 안팎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구”를 느낄 수 있다는 것도 피스보트 크루즈의 매력이다.
피스보트 크루즈는 한국 승객에게도 만족도가 높아 과거크루즈의 승객들이 다시 승선하는 비율도 높다. 한국인에게 피스보트 크루즈 세계 일주가 인기인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한국요리의 제공에 대해 언급하였지만 그 뿐만이 아니다. 한국인 승객에 대한 의사소통 서비스가 충실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강좌와 기항지 투어의 통역도 있고 한국어로 된 선내 신문도 매일 발행된다. 또한 승선자 자신이 마치 멘토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피스보트 크루즈의 매력이다. 한국인 승객이 일본인 승객에게 한국어 인사나 한글 교실 등을 개최하고 호평을 받는 모습을 필자는 여러차례 보았다. 특히 최근에는 K-POP, 영화, 드라마 등 한류 문화가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어 어떤 승객과도 쉽게 교류하고 친해질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이러한 우리의 지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크루즈선 「제니스」 다. 제니스란 최고, 정점을 뜻하는 단어로 최근의 크루즈선과 다르게 제니스는 천연 목재를 이어붙인 외부데크를 가지고 있어 고급스러움이 넘친다. 현재 천연 나무 데크을 가진 여객선은 퀸 메리2 와 같은 최고급 여객선 정도다. 「최고, 정점」 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배다.
아시아에 처음 등장하는 제니스. 찬란한 역사로 채색된 이 배로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은 좋은 안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발코니도 많아 이른바 호화 여객선의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크루즈다. 이 배로 이 가격에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는 건 매우 파격적이다. 나도 오랜만에 세계일주 크루즈에 다시 타고 싶어진 마음은 굳이 밝힐 필요도 없으리라.
[필자소개]
카나마루 토모요시
일본 각지뿐만 아니라 전 세계 5대륙을 크루즈로 방문한 경험이 있는 크루즈 여행 전문 라이터. 일본에서 페리, 크루즈도 다수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 외에도 한국에서 페리선을 갈아타며 부산~제주도~인천~울산~울릉도~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으며, 강원도(속초, 강릉)까지 페리선으로 방문하는 등 한국에서의 배를 이용한 여행에도 관심이 많다. 피스보트 크루즈가 개최하는 한일 크루즈인 피스&그린보트 1회(2005년)에도 승선하였다.